패션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적 언어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진정한 가치를 찾아 소비하는 시대, 브랜드 ’더발론’의 최이든 대표는 내가 입을 수 없는 옷은 고객에게 팔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남다른 행보를 걸어왔다.
K-패션이 세계적 주목을 받는 지금, 일본 시부야의 패션 거리에서도 한국식 스타일을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열풍 속에서 글로벌 무대를 향해 나아가는 브랜드 ‘더발론’이 있다. 별도의 대규모 마케팅 없이도 9년간 자신만의 철학을 지켜온 최이든 대표를 만나 패션이 지닌 진정한 가치에 대해 들어보았다.
디자이너 최이든 대표는 20년 패션 경력을 바탕으로 가볍고 고급스러운 원단을 개발해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춘 '더발론'을 9년간 운영하며 K-패션의 글로벌 도약에 기여하고 있다.
Q.디자이너에서 브랜드 대표로 거듭난 과정과 ‘더발론’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는.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바이어MD와 디자이너로서 20년 넘게 패션계에 몸을 담았다. 기존 형식의 틀에 얽매이지 않은 독창적인 스타일을 담은 브랜드를 구축하고자 하는 열망이 더발론 설립으로 이어졌다. ‘더발론’이라는 이름은 유일무이한 존재를 의미하는 영어 ‘THE’와 우아하게 높이 뛰어오르는 모습을 표현한 발레 용어 ‘발론(ballon)’의 합성어다. 우아함과 독창성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하는 브랜드 철학이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Q. 더발론만의 차별화된 제품 개발 과정과 소재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다양한 의류 라인을 선보이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남성 수트와 남녀 코트가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한 우아하게 떨어지는 실루엣의 여성 드레스도 브랜드의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소비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소재 개발에 있어 가볍고 얇으면서도 밀도 있는 원단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캐시미어와 알파카를 활용한 특별한 원단을 개발부터 제조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관리한다. 단추와 같은 부자재 역시 더발론만의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담아 특별히 제작하여 사용하고 있다.
Q. 브랜드 론칭 이후, 이를 통해 쌓은 더발론만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브랜드를 론칭한 지 9년여가 지났다. 초창기에는 해외에서 더발론의 디자인을 무단으로 복제하여 사용하는 사례들이 있었다. 당혹스러웠지만, 이를 긍정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우리 디자인이 가치 있기에 모방의 대상이 된 것’이라 여겼다. 이러한 경험을 계기로 더발론만의 독보적인 소재 개발과 생산 체계를 구축했다. 트위드, 방모 등의 코트 원단을 직접 제작하고 데님 후가공 기술을 확보했다. 특히 울과 폴리에스터 혼방으로 무겁게 나오는 기존 원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캐시미어와 알파카를 활용하여 가볍고 고급스러운 원단을 개발했다. 실제로 고객들은 “너무 가벼워 자주 손이 간다”는 피드백을 전해오고 있다.
Q. 더발론의 주요 고객층과 그들이 브랜드에 기대하는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공식 온라인 스토어와 오프라인 매장, 그리고 해외 편집숍을 통해 소비자들과 만나고 있다. 고객층은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폭넓은 연령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패션에 관심이 높은 직업군과 전문직 종사자들이 주를 이룬다. 최근 소비 트렌드를 보면, 질 좋은 옷을 구매하는 데 있어 나이와 비용은 더 이상 결정적 요소가 아니다. 현대 소비자들은 진정으로 마음에 드는 제품이라면 주저 없이 가치에 투자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패션이 단순한 옷을 넘어 자아 표현의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Q. K-패션의 인기 속에서 더발론의 전략과 해외 시장에서의 반응은.
한국 드라마와 K-POP의 세계적 인기에 힘입어 한국 패션에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시부야와 같은 패션 중심지에서는 한국식 스타일을 선보이는 일본인들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다. 일본에서 2025년 S/S 컬렉션 발표를 준비 중이며, 현재 90% 이상 준비가 완료된 상태다. 중국과 대만에는 B2B 방식으로 수출하고 있으나, 점차 브랜드 직수출 방식으로 전환에 주력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두 시즌을 성공적으로 선보였으며, 현지의 좋은 반응에 힘입어 지속적인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최근 K-패션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본을 비롯한 해외 패션 박람회로부터 초청과 협업 제안이 쇄도한다. 이러한 기회를 발판 삼아 더발론을 글로벌 브랜드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더발론'의 컬렉션. 클래식한 무드를 유지하면서도 실용성과 시대를 초월한 가치가 담긴 디자인을 선보인다. [사진=더발론]
Q. 패션 디자이너로서 바라보는 2025 S/S 트렌드 전망은.
2025 S/S 시즌에는 스트레이트 핏보다 오버핏이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한 오버사이즈보다는 와이드한 실루엣에서 점차 정돈된 라인으로 귀결되는 스타일이 대세를 이룰 전망이다. 물론 패션 트렌드의 변화 속도가 빠른 만큼 단정적으로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올해 스트릿 패션이 강세였던 반동으로 다음 시즌에는 정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소비 성향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감지된다. 20대부터 중장년층까지 전 연령대에서 ‘가치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큰 비용을 쓰더라도 가치 있고 품질 좋은 의류를 구매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는 패션이 단순한 유행 추구를 넘어 개인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중요한 문화적 코드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Q. 20년 이상의 패션 업계 경력을 가진 디자이너이자, 기업가로서의 경영철학과 브랜드 운영 원칙은.
‘내가 입을 수 없는 옷을 고객에게 팔 수 없다.’ 이것이 디자이너로서 견지해 온 최소한의 양심이자 브랜드의 핵심 철학이다. 별도의 대규모 마케팅 없이도 더발론이 좋은 평판을 쌓아올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이러한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제품에 진정성을 담고자 했던 노력이 옷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이를 알아봐 준 소비자들의 지지가 브랜드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지난 9년의 여정을 되돌아보면 포기하고 싶을 만큼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더발론을 지키고 패션과 직원들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지금까지 브랜드를 이끌어온 원동력이 되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더발론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다.
Q. 한국 패션 산업의 미래와 나아갈 방향에 관한 생각은.
현재 패션업계를 살펴보면 수많은 브랜드가 생겼다가 단기간에 사라지는 현상이 만연하다. 디자이너로서 옷을 너무 가볍게 접근하고, 피상적으로 제작하는 풍토가 안타깝다. 패션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특히 K-패션이 세계적 주목을 받는 지금, 한국의 이름을 걸고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만큼 국가적 위상을 고려하여 옷에 대해 더욱 진중하고 책임감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단기적 성과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패션의 가치와 정체성을 고민하며,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고유의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