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소’는 전 세계 이용자가 매일 쓰는 생산성·디자인 앱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누적 다운로드 2천만 건, 해외 이용자 비중 98%를 기록하며 글로벌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대표작 ‘로고샵’은 디자인 지식이 없어도 5분 안에 로고를 완성할 수 있는 앱이다.
2018년 애플이 개최하는 정보 기술 콘퍼런스(WWDC)에서 팀 쿡 CEO가 발표를 진행하던 중, 무대 화면에 ‘로고샵’ 아이콘이 다른 글로벌 서비스들과 함께 깜짝 등장했다. 유명 서비스들 속에서 한국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만든 앱이 소개된 찰나다. 디지털노마드로 세계를 여행하던 최한솔 대표는 이 일을 계기로 김상원 대표와 창업을 결심했다.
'픽소' 최한솔 대표. 전 세계 2천만 명이 사용하는 생산성과 디자인 앱을 만들며 해외 이용자 비중 98%를 기록한 글로벌 스타트업이다. 자율과 몰입이 살아있는 근무 환경 속에서 구성원들이 함께 성장하며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가고 있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픽소의 시작은 2018년 WWDC에서 ‘로고샵’이 전 세계에 공개된 순간이었다고. 당시 상황이 궁금하다.
그때는 픽소 창업 전이었다. 당시 노출된 제품은 ‘로고샵’으로, 디자인 경험이 없는 사람도 5분 안에 전문적인 수준의 로고를 만들 수 있는 앱이다. 현장에는 공동대표 김상원이 있었다. 디자이너인 나와 개발자인 김 대표가 하나의 아이디어로 시작하고, 완성한 앱이 우연히 세계 무대에 보인 순간이다. 출시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함께 소개된 앱 가운데는 이미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서비스가 많아 그 의미가 더욱 컸다.
김 대표 주변에는 대부분 팀 단위로 참가한 전 세계 각국에서 참여한 개발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제대로 팀을 꾸려 더 뛰어난 제품을 만들자’라는 결심이 섰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김 대표는 나에게 창업을 제안했다.
Q. ‘로고샵’은 어떤 제품인가.
‘로고샵’은 디자인 지식이 없어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나만의 로고를 만들 수 있는 앱이다. AI 기능을 활용해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시안을 시도할 수 있다. 브랜딩과 마케팅을 직접 해결해야 하는 시대에 특히 유용하다. 혼자 일하는 크리에이터, 셀러, 프리랜서가 로고와 디자인을 여러 버전으로 만들어 시장 반응을 확인하고, 피드백을 반영해야 할 때,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며 수준 높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
Q. 창업을 제안받았을 때 심경은 어땠나.
걱정이 컸다. 팀을 꾸린다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고,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이 있었다. 동시에 앱이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고민 끝에 창업 제안을 받아들였다. 전 세계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더 나은 제품을 시장에 내놓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Q. 픽소 설립 이후 생산성과 몰입을 높이는 도구를 개발해 왔다. 이를 향상하는 자신만의 방법이나 루틴이 있는지 궁금하다.
오전에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계획을 세운다. 오후는 팀과 협업하는 시간, 저녁에는 혼자 몰입하는 시간을 갖는다. 어떤 일이든 목표를 작은 단위로 나눠 집중력을 높이는 편인데, 우리가 만든 앱 '포커스키퍼(Focus Keeper)를 직접 사용하며 습관을 구축해왔다.
이 과정에서 ‘완벽하게 끝낸다’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낸다’라는 기준이 있다.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결과물이 실제로 완벽한 경우는 드물고, 대개 개인 만족에 그친다. 그래서 100점을 목표로 하기보다 제한된 시간 안에 60~70점을 완성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본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 빠르게 피드백을 받고 수정할 수 있다. 다만 품질을 높이는 데 시간이 꼭 필요한 작업은 별도로 충분히 시간을 가진다.
Q. 이용자의 98%가 해외에 있다. 글로벌을 대상으로 서비스하는 만큼, 현장에서 체감하는 차이가 있을 것 같다.
픽소는 국내보다 해외 시장의 변화와 유행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업무에 해외 기업들이 사용하는 업무 프로세스와 참고 자료를 적극 반영하며, 세계 각국에서 어떤 서비스가 주목받고 어떻게 변화하는지 놓치지 않으려 한다. 덕분에 구성원들은 최신 트렌드와 앞선 프로세스를 꾸준히 적용한다. iOS 앱 비중이 높아 애플이 발표하는 신기술도 가장 먼저 검토한다. 당일 공개된 기술이라도 유용하면 바로 적용을 검토한다. 신기술을 가장 먼저 적용한 사례가 되면 애플과의 협력 기회가 커지기 때문이다. CEO와 PO 등 주요 리더는 직접 컨퍼런스에 참석해 글로벌 동향을 살핀다.
Q. 조직 문화를 담당하는 ‘피플팀’은 어떤 일들을 하나.
피플팀은 픽소다운 조직문화를 만들고 유지하는 부서다. 리더십 코칭, 성과 관리, 피드백 문화 정착, 온보딩, 채용 기준 마련 등 조직 운영을 맡는다. 피플팀이 생긴 뒤로 구성원 간 기대와 책임이 분명해졌고, 새로 합류한 인원이 빠르게 조직에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Q. 디지털노마드로 일한 시간이 픽소 조직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디지털 노마드로 일했던 경험은 픽소 조직 문화에 큰 영향을 줬다. 구성원들이 전문성과 책임을 기반한 자율성과 몰입을 바탕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역할과 목표가 명확히 공유된 상태에서 각자가 주도적으로 일한다. 상시적으로 목표 달성에 직결된 과업에는 긴밀하게 협업하고, 일상적인 소통은 최대한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업무 프로세스와 자동화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한다. 매주 수요일은 중요한 과업에 온전히 집중하는 ‘포커스데이’로 운영한다. 내가 몰입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건 디지털노마드 시절에 확신했다. 세계를 여행하며 일하는 동안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반복하는 탐구를 거듭했고, 그 안에서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Q. 픽소가 말하는 자유와 자율성은 무엇인가.
‘자유’와 ‘자율성’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픽소가 말하는 자유와 자율성은 방임과 다르다. 조직은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집단이기 때문에, 각자 맡은 역할이 정확해야 한다. 역할이 없는 상태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하면, 그 일은 대개 조직의 우선순위와 어긋난다. 그 결과 전체 속도가 늦어진다. 먼저 주어진 일을 완수해야만 새로운 시도를 할 권한과 신뢰가 생긴다. 이 원칙이 지켜질 때, 자율성은 무책임한 자유가 아니라 성과로 이어지는 힘이 된다.
Q. 많은 시도를 해온 만큼 실패도 있었을 것이다. 픽소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픽소는 실패를 단순한 실수로 보지 않는다. 무엇을 얻을지 분명히 하면서, 다음 시도를 위한 자산으로 남긴다. 목표를 달성한 순간을 끝으로 여기지 않고, 더 나은 성과를 만들기 위해 계속 새로운 시도를 이어간다. 새로운 도전을 반복하다 보면 실패는 피할 수 없지만, 이를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다만 그 원인을 분석해 빈도를 줄이거나, 더 의미 있는 실패로 만들 수 있다. ‘그때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애초에 가정이 잘못된 건 아닐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회고하고, 아쉬운 점을 실행이 가능한 계획으로 정리해 전사에 공유한다.
시행착오는 빠르게 겪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고민한 기록 위에서 다음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Q. 어떤 리더로 기억되고 싶은가.
함께 중요한 문제를 끝까지 푸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마주했을 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시도하며, 방향을 잃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팀이 눈치 보지 않고 시도와 개선을 반복하면서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이만하면 됐다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탁월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해주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함께 일한 사람들의 자리에 ‘돌이켜보면 그 사람과 일했던 경험이 분명 내 성장에 도움이 되었어’라는 말이 남는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