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이 없다. 얼굴에는 여유가 넘쳐나고 어깨는 다부지며 짙은 청남방과 손목에 찬 팔찌들에서 남다른 센스까지 돋보인다. 반도체 제작 장비인 SMT를 제조하고 주식회사 ‘알프스(ALPS)’ 박두영 대표가 마주한 첫인상은 특별했다.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은 인사한 순간부터 유연했다. “SMT라는 단어부터 낯설죠? 우선 눈으로 확인해 보면 더욱 이해하기 수월할 겁니다.”
인터뷰에 앞서 현장부터 둘러보자는 박 대표는 부지런히도 돌아가고 있는 기계들을 보여주며 세밀하게 설명했다. 눈으로 직접 보니 저절로 고개가 아래위로 끄덕여졌다.
SMT를 제작하는 두 개의 라인과 수작업을 하는 현장까지 신기한 세상을 둘러보는 와중에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말 속에는 따뜻함이 묻어났다.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직원들을 보니 미소가 지어졌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이목구비처럼 뚜렷한 자아실현과 철학까지 자세하게 들여다봤다.
알프스 박두영 대표. 제품 한 장, 직원 한 사람에 진심을 다하는 것, 그게 그의 경영 철학이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SMT’란 무엇인가.
우리 회사는 반도체 장비에 들어가는 테스트 보드를 제조·납품하고 있다. SMT라 하며, 인쇄회로기판 표면실장이라고 풀이된다. 개발 중이거나 이미 완성된 다양한 반도체 제품이 마지막 완성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거치는 작업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반도체 테스트 보드를 만드는 일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에서 반도체 칩을 납품받으면, 그 칩이 제대로 상용화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진행한다. 칩을 보드에 장착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테스트하고, 확인이 완료된 작업물을 다시 주요 거래처에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기본 판인 보드를 제작하는 일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반도체가 상용화되려면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므로, 그 점에 가장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회사의 강점은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여러 반도체 제품에 호환된다는 점이다. 하루에 많게는 500장까지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알프스의 SMT 2라인은 반도체 테스트 보드 시장에서 ‘무에서 유를 만드는’ 핵심 동력이다. 하루 500장 규모의 생산력으로 품질과 효율을 구현하며, 다양한 반도체 제품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정확히 10년 전이다. 반도체 관련 업체에서 15년 동안 일하면서 여러 기술력과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다. 당시 대표가 부서를 자주 이동시켜 주었는데, 덕분에 품질팀에도 있어 보고 자재팀에도 몸을 담가보고 영업팀까지 경험하며 여러 가지를 다 할 수 있는 능력을 쌓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아차’하는 마음이 들었다. 일을 하다 보니 나 혼자서도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 순간 시야가 확 트였다.
그때가 마흔두 살이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고민이 많았다. ‘내가 과연 임원까지 갈 수 있을까. 어렵겠지. 그렇다면 새로운 길을 가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업 초기에는 가족도 불안해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할 수 있다며 든든하게 응원해 줬고, 덕분에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가족에게는 늘 고맙다.
돌이켜보면 가장 두려웠던 건 외부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초창기 멤버 하나 없이 혼자 시작했다. 말 그대로 맨땅의 헤딩이었다. 작은 사무실을 얻어 인두기 두 대를 설치해 놓고 수리부터 시작했다. 자금이 조금 모아져서 10억 원 가까운 SMT 라인을 구매했다. 그렇게 한 걸음씩 쌓아 올린 결과, 창업 10년이 지난 지금은 SMT 라인 두 대를 구축하고 스무 명이 넘는 직원이 함께 일하는 회사로 키울 수 있었다.
Q. 직원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따뜻한 가족애가 느껴졌다.
회사를 설립하고 기존에 함께 일하던 실력파 네 명을 스카우트했다. 10년 이상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라 손발이 처음부터 잘 맞았다. 그동안 함께해 준 고마운 마음이 커서 지분도 나눴다. 합리적인 임금과 복리후생을 챙겨주고, 학자금 대출 지원, 고급 세단을 선물하기도 했다. 진심을 전하며, 내 사람으로 묶어두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회식이나 야유회를 할 때면 내가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어린 직원들이 고민을 털어놓으면 많이 들어주고, 금전적인 부분이나 삶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면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 해결책을 찾고, 도움이 되었을 때 가장 뿌듯함을 느낀다. 리더로서 그게 가장 큰 보람이다.
요즘은 새로운 인재를 찾고 있다. 회사가 쌓아 온 노하우를 이어받을 수 있는 젊고 성실한 인재들이 회사에 지원하길 바란다. 인수인계가 쉽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큰 기대를 두지 않고 사람을 뽑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서두르거나 보채면 제품의 품질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될 때까지 기다려 준다. 우리 회사의 자랑 중 하나는 이직률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오래 머물고 싶은 회사가 되었다는 것, 그게 무엇보다 기쁘다.
Q. 회사를 창업하고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주저앉은 적이 있다. 보드 하나를 투입하면 대량생산이 이루어지는데, 그때 잘못된 보드를 장치에 넣는 바람에 불량 제품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상 유무를 확인했어야 했는데, 어리석게도 그 과정을 놓쳤다. 그때 손실이 4~5억 원 정도였다.
그 시기가 2020년이었다. 매출이 1년에 100퍼센트씩 성장하던 전성기였다. 이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까 어느 순간 나태함에 빠졌던 것 같다. 그러면서 제품 품질에 조금씩 소홀해졌고, 직원들을 많이 믿다 보니 마음이 느슨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값진 경험이었다. 그 일을 겪은 이후로는 오전과 오후, 하루 두 번씩 검수를 진행하고 있다.
Q. 회사 이름인 ‘알프스’가 특별하게 와닿는데.
알프스(ALPS)는 ART-WORK, LOGISTIC, PCB, SMT의 약자다. 사업을 시작할 때 이 네 가지를 모두 해보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ART-WORK은 설계를, LOGISTIC은 물류와 유통을 뜻한다. PCB는 앞서 설명한 보드를 의미하고, SMT는 현재 회사의 주력 사업이다.
어느 날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시청하다가 스위스의 알프스가 방영되는 장면을 보게 됐다. 화면 속 ‘ALPS’라는 대문자를 보는 순간, 이 네 가지 단어가 자연스럽게 봉긋 피어올랐다. 그렇게 지금의 사명 ‘알프스’가 만들어졌다. 아직 완성체는 아니지만, 설계와 물류, 유통, PCB 제작까지 꾸준히 하고 있다. 완벽한 알프스가 될 때까지 지금도 한 걸음씩 오르고 있다.
Q. 자기애가 돋보인다.
손톱네일도 받는 남자다. 손등에 찬 다섯 개의 팔찌는 모두 의미가 있다. 사업을 하면서 항상 불안하다. 그래서 일종의 부적처럼 끈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다. 불운을 막아준다는 것, 부를 쌓게 해주는 것, 건강과 행운을 지켜준다는 뜻이 각각 담겨 있다.
아침마다 하는 수영으로 체력과 체중을 관리하고, 옷차림을 꾸미는 것도 결국 내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일이다. 자신감이 붙으면 사람을 대할 때 자연스럽게 여유와 에너지가 생긴다. 보이는 모습이 스마트했으면 한다.
Q. 12월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올해 새로 들어올 장비인 SMT 3라인은 특별하다. 기존에 사용하던 보드는 한계치가 650mm로 작은 편이라, HBM처럼 고성능 그래픽 카드나 인공지능 가속기, 고성능 컴퓨팅 등에 사용되는 초고속 메모리 기술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이번에 도입할 3라인은 810mm까지 지원돼 다양한 분야에서 충분히 대량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 기대가 크다. 국내에서도 이런 규모의 장비는 많지 않다. 그래서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롭게 떠오르는 기술에 상응할 수 있는 제작 라인을 만들면, 순이익도 많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지금보다 약 30퍼센트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Q. 현재 업계 상황과 정부에게 바라는 정책들이 있다면.
업계 상황은 좋지 않다. 슬프게도 앞으로의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 같다는 비보다. 더 안타까운 건 그 예상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너무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선진국을 따라가면 됐기 때문이다.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달리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선진국이다. 더 이상 모방할 대상은 줄었고, 따라오는 나라들은 많아졌다. 시장을 내어주는 일도 늘고 있다. 이제는 앞서서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야 할 때다. 그러나 그 방향이 눈에 보이거나 문서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단정 짓기 어렵다. AI를 중심으로 산업 전체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에 대한 적응과 파악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정책을 중소기업 중심으로 고민해 주었으면 한다. 여러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피와 살이 되지 않는다. 되레 독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쪽 면만 보고 만든 정책은 균형을 잃게 마련이다. 많은 중소기업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들어주길 바란다.
Q. 어떤 내일을 꿈꾸고 있나.
경영 철학이 있다. 처음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사업을 시작했지만, 리더로서 자리를 잡고 나니 그때부터는 엄청난 책임감이 생겼다. 직원이 25명까지 늘어나면서 훗날 이 직원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결국 나는 60명 가까운 사람들의 미래까지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생 함께 갈 수 있는 회사가 되었으면 한다.
상장 계획도 있다. 내가 경영인으로 있을 때 이뤄질 수도 있고, 혹은 다음 대표가 내 자리를 이어받아 회사를 상장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회사가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보는 목표이자 내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