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서대문역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흥국생명 빌딩이 나온다. 이 건물 앞에는 높이가 22m에 이르는 대형 조형물이 서 있다. 1분에 한 번씩 망치질하는 이 작품은 미술가 조나단 브롭스키가 노동의 엄숙함을 표현한 것이다. 2002년에 세워진 뒤 23년 동안 쉬지 않고 팔을 움직여 온 이 조형물의 움직임을 책임지는 곳이 가온유압이다.
가온유압은 건설장비와 제철 설비, 하역설비 등 여러 산업에서 쓰이는 유압실린더를 개발하고 관리한다. 유압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힘으로, 다양한 장비가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다. 윤광형 대표와 인터뷰를 나누었다.
가온유압 윤광형 대표. 가온유압은 2,000건이 넘는 유압실린더 개발로 산업 장비에 필요한 동력을 구현해 왔다. 건설, 제철, 하역 분야에서 필요한 조건에 맞춰 설계하며, 특수 조형물과 중장비를 다뤄왔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교 때부터 언젠가는 창업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당장 떠오르는 아이템이 없어서 교수님의 소개로 인천의 유압 전문회사에 취직했고, 기술자로 10년 넘게 일했다. 회사가 안정적이었고 기술자로서 어느 정도 인정도 받고 있었지만, 계속 월급만 받아서는 자식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가 빠듯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사업을 구상하게 되었다.
실린더 업종은 기술만 확실하면 수요가 꾸준해서 다른 업종보다는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그렇게 2006년에 창업했고,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자식들의 등록금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그 일을 마친 뒤로는 내 욕심이나 성취보다 직원들과 회사의 앞날을 생각하며 일하고 있다.
Q. 흥국생명 빌딩 앞에 있는 ‘해머링맨’은 팔을 두드리는 움직임을 반복하는 대형 조형물이다. 이 조형물의 유지·보수를 20년 가까이 맡아왔다고 들었는데, 처음 그 일을 맡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운이 좋았다. 회사에 다니면서 독립을 준비하던 때에 흥국생명에서 연락이 왔다. 회장님이 해머링 속도를 더 높이고 싶었는데, 문제가 생겨서 팔이 계속 떨어진다고 했다. 해머링맨은 유압실린더로 움직이는 조형물이어서 유압 전문회사를 찾은 상황이었다.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전문 분야가 아니라는 이유로 의뢰를 받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독립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럼 내가 해보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서둘러 회사를 설립하고 해머링맨 유지·보수 일을 맡았다. 준비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창업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해머링맨 유지·보수 일을 통해 여러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가온유압 전경. 운광형 대표는 함께 일해온 구성원의 성장을 우선에 두고 회사를 운영한다. 일의 성과보다 사람의 앞날을 먼저 생각하며 회사를 꾸려가려는 태도, 오래 함께 갈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마음이 경영에 드러난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다른 유압 전문회사와 차별화되는 가온유압만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현재 우리의 주요 고객사는 제철 설비를 다루는 포스코, 현대제철, 동부제강을 비롯해 하역설비 업체인 동해기계와 에스엠티지가 있다. 건설 분야에서는 대모엔지니어링, 경원테크, 필엔지니어링 등이 있고, 산업용으로 한국타이어가 있다. 고객사를 보면 알 수 있듯 여러 산업을 상대하고 있다.
창업 초기 우리는 다른 회사와 달리 새로운 유압실린더 도면을 만들 때마다 일련번호를 붙이기로 했다. 0001에서 시작한 번호가 지금은 2100을 넘는다. 그동안 2,000개가 넘는 유압실린더를 개발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한국 실린더 산업의 2세대에 속하고, 기술자 대부분이 10년 이상, 길게는 30년 넘게 여러 유압실린더를 개발해 왔다. 유압실린더와 관련해서는 최고의 기술력과 경쟁력이 있다고 자부한다.
Q. 준비 중인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다면.
유압실린더를 개발한 지는 30년에 가까운데, 가온유압의 첫 해외 진출은 2023년이었다. 처음에는 중국을 목표로 삼았지만, 중국의 기술과 단가가 너무 빨리 올라가면서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으로 방향을 바꿨고, 운 좋게 한 업체와 계약을 맺어 거래를 시작했다. 앞으로는 해외 거래처를 더 늘려볼 생각이다. 내년에 일본이나 중국, 인도에서 열리는 건설장비 전시회에 참가해 우리의 기술을 선보일 계획이다.
Q. 산업의 비전이나 전망은 어떤 편인가.
유압실린더는 언제나 일정 수요가 있는 분야다. 큰 기계를 움직이거나 특장차를 움직일 때 유압실린더가 무조건 필요하고, 이를 관리하는 일도 계속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은 불황이 따로 없는 편이었다.
그런데 최근 건설 경기가 침체하면서 유압실린더 수요 비중이 큰 건설 중장비 일이 예전만큼 많지 않다. 우리처럼 소량 개발이나 설계 의뢰를 받는 기업은 타격이 크지 않지만,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물량이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중국은 국가 지원을 통해 기술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 어려움이 많다.
Q. 사업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우리는 유압실린더를 개발하는 기업이라 독특한 의뢰가 많은 편이다. 예전에 원유 시추 관련된 일을 하는 웨이코라는 업체의 의뢰가 들어온 적 있다. 원유는 시추공을 지하까지 뚫어서 뽑아내는데, 시간이 지나면 시추공 사이에 틈이 생겨 지하 압력과 지상 압력이 비슷해지고 그렇게 되면 원유가 줄어든다. 웨이코에서는 시추공 안의 가스만 먼저 빼내면 시추 효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이를 사업화하려고 했었다. 이분들이 원유 시추와 관련해서는 전문가지만, 가스를 뽑아내는 제대로 된 실린더 기술이 없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문하고 있었다.
몇 차례 미팅하고 의뢰를 받아들여 팀원들과 함께 몇 날 며칠을 고생하며 새로운 실린더를 개발해 냈다. 중국 현장에서 테스트한 결과 기존 방식 대비 산유량이 무려 30% 가까이 증가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워낙 오랫동안 고생했고, 중국까지 가서 테스트까지 거쳤던 제품이라 그때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가온유압의 경쟁력은 다양한 산업에서 들어오는 요청을 해결해 오며 생긴 이해에서 나온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2026년에는 수출을 위해 여러 나라 전시회에 꾸준히 참여할 생각이다. 애초에 욕심을 크게 정해놓고 시작한 편은 아니다. 개인적인 목표는 어느 정도 이뤘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함께 일해온 구성원들이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회사를 키워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