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식품이 세계로 나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복잡하다. 언어와 문화의 벽, 까다로운 통관 규정, 낯선 시장의 성격까지. 그 사이를 묵묵히 연결해 온 사람이 있다. 17년째 식품 무역 현장을 지켜온 김효길 대표다.
그는 음료 제조사에서 해외 영업을 맡으며 수많은 바이어를 만났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질문이 있었다. 다른 한국 식품은 없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한국에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제품이 많은데, 정작 해외에서는 그 가치를 잘 모른다는 사실이 그를 움직였다. 그렇게 시작한 아시안푸드컨넥트는 지금 30여 개국에 한국 식품을 수출하며 남미, 중동, 아프리카 같은 신흥시장에 한국의 맛을 전하고 있다. 시장이 바뀌고 세상이 빨라져도, 김효길 대표가 지키려는 건 단 하나다. 사람이 만드는 무역, 진심이 통하는 무역이다. 김효길 대표와 인터뷰를 나누었다.
아시안푸드컨넥트 김효길 대표. 한국 식품의 잠재력을 일찍 알아봤다. 현지 소비자의 취향을 이해하며, 신뢰를 가장 중요 자산으로 생각하며 무역해왔다. [사진=아시안푸드컨넥트]
Q.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식품업에 몸담은 지 어느덧 17년이 됐다. 처음에는 음료 제조사에서 해외 영업을 맡았다. 5년 정도 일하면서 느낀 건, 해외 시장에서 한국 음료뿐 아니라 다양한 식품에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박람회에 나가면 현지 바이어들이 꼭 묻곤 했다. 다른 한국 식품은 없느냐고. 그 말을 여러 번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바뀌었다. 한국에는 정말 좋은 제품이 많은데, 정작 해외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아쉬웠다.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했다.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아직 열리지 않은 기회가 많다고 느꼈다.
Q. 주요 비즈니스 영역과 경쟁력이 궁금하다.
아시안푸드컨넥트는 기본적으로 무역상사다. 다른 식품 제조사나 상사와 달리 남미, 중동,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한다. 대부분의 무역상사는 언어나 문화적 장벽 때문에 교포 중심으로 거래하지만, 우리는 현지 바이어들과 직접 거래한다. 공급 네트워크가 가장 큰 경쟁력이다.
멕시코 시장만 봐도 그렇다. 월마트가 3천 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지만, 그 안에 진열된 한국 제품은 열 가지도 되지 않는다. 대기업들조차 아직 신흥시장 진출이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와 협력하고 있다. 해외 영업팀 인원이 수십 명인 기업들도 신시장 판로를 찾지 못해 함께 일하고 있다.
현지 시장을 이해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품 개발과 현지화 작업도 직접 진행하고 있다. 지금은 전 농심 개발자와 함께 라면을 개발 중이다. 한국 라면은 맵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흥미롭게도 멕시코에서는 오히려 매운 라면이 가장 잘 팔린다. 다만 현지 소비자들은 향을 중요하게 본다. 한국 라면은 소고기나 다른 원재료 향이 거의 없어, 현지 입맛에 맞게 향을 살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문제는 고기 성분이 들어가면 통관이 되지 않는 나라가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버섯으로 고기 향을 내는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이미 1년 넘게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일이다. 작은 조정 하나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현지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다.
Q. 운영하는 브랜드와 수출 전략은.
현재 두 개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예스셰프(yeschef)’는 식자재 브랜드이고, ‘씨팜(seafarm)’은 수산물 브랜드다. 해외 바이어들이 특정 제품을 독점적으로 선점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아 브랜드를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
멕시코 월마트의 PB에 김을 납품하게 된 것도 그런 과정에서 이뤄졌다. 이 계약은 하루아침에 성사된 게 아니다. 1년 반 동안 현지에서 프로모션하고, 김밥 체험 행사를 꾸준히 열었다. 그 결과 월마트 MD가 직접 제안을 하면서 계약이 성사됐다.
이런 결과를 만들려면 제품 기획 단계부터 수출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성분 구성, 사용 언어, 라벨 디자인까지 처음부터 수출 대상 국가에 맞게 설계해야 한다. 미주, 동남아, 러시아 등 어느 지역으로 나가느냐에 따라 맛과 보관 방식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러시아로 수출하는 음료는 얼지 않도록 온도와 습도를 세심하게 조절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건 제품의 콘셉트와 타깃이 명확해야 한다. 처음부터 시장과 소비자를 정확히 정하고 출발해야 성공할 수 있다.
Q.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B2B 식품 수출 플랫폼 ‘푸딜(Foodil)’는 해외 진출을 원하는 국내 제조사들을 위해 만들었다. 신시장 위주로 제품을 공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품 수출 대행 요청이 쏟아졌다. 제조사 대표들이 직접 연락해 자신들의 제품을 해외에 팔 수 있겠느냐고 묻는 일이 많았다. 국내에는 식품 제조업체가 워낙 많고, 매년 3,000~4,000개 정도 새로 생긴다. 그만큼 자신이 만든 제품을 해외로 내보내고 싶어 하는 수요가 크다. 특히 국내 경기가 어려울 때일수록 해외시장을 찾는 게 절실해진다. 하지만 직접 해외에 나가 영업하고, 바이어를 만나고, 박람회 참여는 일은 쉽지 않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성사 확률도 낮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푸디는 셀러와 바이어를 가장 간편하게 연결해 주는 플랫폼이다. 기존 무역 플랫폼들이 신뢰성이 떨어지거나 홍보용 사이트인 경우가 많았지만, 푸디는 제품 등록부터 발주, 계약, 서류 작성, 물류 추적까지 모두 한곳에서 처리할 수 있다. 아날로그로 진행되던 무역을 디지털 방식으로, 식품 무역의 변화를 이루고자 했다.
2024년 8월에는 ‘푸딜 베트남’을 열었다. 푸딜에 가입돼 있던 500개 셀러 중 몇몇 베트남 업체가 있었는데, 콜롬비아 바이어가 한국 제품과 함께 베트남 제품도 주문하면서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베트남 셀러들이 직접 운영을 맡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다. 그래서 개발팀이 베트남 버전을 열었고, 8월 초 호치민에서 해외 바이어와 베트남 셀러들을 초청해 오프닝 행사를 진행했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나라로, 열대부터 온대, 아열대까지 다양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쌀과 과일 등 식재료가 풍부하고, 식품 공장만 해도 8천 개가 넘는다. 대부분 내수에 집중해 왔지만, 수출을 원하는 제조사에 푸딜 베트남은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베트남 호치민에서 열린 국제 식품 무역 협력 포럼에 아시안푸드컨넥트 김효길 대표가 참석했다. [사진=아시안푸드컨넥트]
Q. 주 고객층과 관리 방법은.
우리의 주 고객은 해외 수입사와 유통사다. 매년 모두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가능한 한 출장을 통해 직접 만나 소통하려 한다.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가장 값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맞지 않을 때는 오히려 그쪽에서 한국으로 먼저 찾아오기도 한다. 2024년 한 해만 해도 한 달에 한 번꼴로 해외에서 손님이 방문해 바쁜 시간을 보냈다. 내부적으로는 회사 구성원은 물론, 제품을 공급해 주는 제조사와 물류 파트너까지 모두 고객이라 생각한다. 함께 일하는 모든 관계가 연결되어 있어야 건강한 무역이 이뤄진다고 본다.
파트너사들과는 긴밀하게 연락한다. 식품 분야는 셀러가 제품을 팔고 싶어 하는 만큼, 바이어도 좋은 제품을 먼저 선점하려 한다. 케이푸드 인기가 커지면서 현지에서도 끊임없이 한국 제품을 찾는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한국 제품을 본 현지 소비자들이 파트너사에 문의하면, 우리는 즉시 제품을 소싱하고 브랜드를 구성하거나 현지 취향에 맞게 조정해 공급한다. 이런 속도감이 경쟁력이다.
Q. 시장 전략과 최근 성과는 어떻게 되나.
매출은 국가별로 고르게 분산해 운영한다. 한 나라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시장을 동시에 키우는 전략이다. 많은 기업이 중국처럼 규모가 큰 시장에 집중하지만, 우리는 러시아, 브라질, 멕시코, 사우디 등 다양한 국가에서 비슷한 비중으로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24년에는 대양주 지역으로 확장해 호주, 뉴질랜드, 통가, 미크로네시아 시장을 새로 열었다. 최근에는 냉장·냉동 제품에 집중하고 있다. 유통망 확보가 쉽지 않지만, 그만큼 경쟁이 적고 아직 기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식품은 한 번 수출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재주문이 이어진다. 한 컨테이너로 시작했다가 몇 달 만에 주문이 10대, 20대로 늘어나는 경우도 많다. 품질에 큰 문제가 없으면 시장이 스스로 반응한다. 우리는 현지 소비자를 대상으로 신제품 프로모션도 진행하며 브랜드 인지도를 쌓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 시장에서도 통한다고 믿는다. 물론 홍삼처럼 향이 강한 제품은 서양에서 호불호가 갈리지만, 김치처럼 정통 한국 식품은 꾸준히 현지 소비층이 늘고 있다. 현재 김치를 포함해 여러 제품을 수출 중이다.
성과도 분명히 있다. 2023년 8월, 뉴질랜드에 자체 브랜드의 냉동 핫도그를 처음 수출했는데 지금은 한 달에 두 대씩 컨테이너가 나간다. 인구 500만 명의 나라에서 이런 수치는 의미가 크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다는 뜻이다. 출시 1년 만에 현지 마켓 점유율 80%를 차지했고, 로컬 업체들이 비슷한 디자인으로 제품을 내놨지만, 맛과 가격에서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뉴질랜드 현지 매장에 진열된 아시안푸드컨넥트의 자체 브랜드 냉동 핫도그. 출시 후 찾는 소비자가 꾸준히 늘어 매월 두 대 규모의 컨테이너가 출고된다. [사진=아시안푸드컨넥트]
Q. 경영철학이 궁금하다.
경영 철학은 ‘사람이 하는 일에는 사람의 온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은 소규모 스타트업이지만, 회사를 키워 나라에 보탬이 되고, 함께 성장할 인재를 채용해 건강한 조직을 만들고 싶다. 생성형 AI가 많은 일을 대체하고 있지만, 무역은 여전히 사람이 중심인 비즈니스다.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 명함 500장이 금세 없어질 만큼 사람을 직접 만나야 한다. 그런 만남 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성이다. 그중에서도 ‘배려’다.
이 배려의 마음은 제조사와의 관계에서도 같다. 제조사들이 제품을 만들고 해외 판로를 개척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지 잘 알고 있다. 그 마음을 이해하고, 그 진심을 소중히 여긴다. 샘플 하나도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바이어에게 전달될 때까지 꼼꼼히 확인하고, 피드백을 반드시 받는다. 실제로 사우디에 보낸 샘플 몇 개가 좋은 반응을 얻어 이후 컨테이너 단위로 주문이 이어진 적도 있다. 그런 과정이 바로 진심이 통하는 비즈니스라고 믿는다.
Q. 사업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네덜란드 박람회에서의 일이다. 보통 박람회에서 현장 계약이 성사될 확률은 1%도 되지 않는다. 그만큼 어렵다. 그런데 계약을 하지 않았는데, 한국에 돌아와 보니 회사 계좌에 입금이 되어 있었다. 처음엔 어디서 들어온 돈인지 몰라 은행에 문의했는데, 알고 보니 네덜란드 박람회에서 상담했던 업체였다. 다른 사업자 명의로 송금해 확인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분들이 연세가 있으셨고, 당시 나는 30대 초반이라 아마도 먼저 신뢰를 보이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 마음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감사했다.
Q. 최근 느끼는 업계 변화가 있다면.
최근 업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이슈는 관세다. 올해만큼 급변한 적이 없었다. 트럼프의 한마디가 전 세계 무역에 영향을 준다. 환율 변동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 바다 위에 떠 있는 화물 금액만 10억 원 정도인데, 환율이 30원만 달라져도 손익이 3천만 원씩 움직인다. 식품업계는 영세한 기업이 많아 내수 경기나 주요 수출국의 정책, 수입 규정이 조금만 바뀌어도 타격이 크다. 대응이 늦으면 순식간에 시장에서 밀려난다.
최근 국내 경기가 좋지 않아 제조사들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출은 어렵지만, 위기를 버티게 해주는 가장 현실적인 답이다.
Q.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푸딜(Foodil)는 식품 무역을 더 쉽고 편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해외 거래는 여전히 절차가 많고 복잡하다. 서류를 만들고, 물류를 확인하고, 거래 내역을 관리하는 데만도 시간이 많이 든다. 그래서 발주부터 계약, 선적서류 작성과 보관, 물류 추적까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직접 만들었다.
지금은 고객사들과 계속 의견을 나누며 기능을 발전시키고 있다. AI를 활용해 제품 추천이나 챗봇 상담, 이미지 검색, 현지어로 된 프로모션 자료 자동 제작 기능을 추가하고 있다.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 식품 제조사들이 해외 시장에 부담 없이 진출할 수 있고, 한국 식품이 더 넓은 시장으로 나가는 통로가 되길 바란다.
앞으로는 신시장을 계속 넓히고, 제품별과 국가별로 고르게 성장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한국적인 제품을 찾아 현지 소비자 취향에 맞게 다듬고, 냉장·냉동 같은 고부가 제품군도 키워갈 생각이다. 푸딜 베트남을 시작으로 아시아 각국으로 플랫폼을 넓게 펼치며, 이름처럼 진짜 ‘아시안푸드컨넥트’로 자리 잡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