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일은 공간의 온도를 결정한다. 차가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생활의 결이 담기기에 매력적이다. 김희정 대표는 그 재료가 놓이는 순간 공간의 성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IMF 시절,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의 타일 유통을 도우며 일을 시작했다. 서울에 올라와 독립을 시도했지만, 기존 거래처 위주의 유통망에 막혀 제품을 확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박람회를 직접 찾아가 3일을 기다린 끝에 해외 본사와의 거래를 성사 해냈다. 그렇게 시작된 수입 유통 사업은 전국 400여 개 대리점으로 확대됐다.

최근에는 시공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가볍고 간편하게 설치할 수 있는 신소재 타일 개발에 나섰다.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김희정 대표에게 사업은 공간의 쓰임을 다시 생각하는 일이다.

혜인세라믹 김희정 대표에게는 일관성이 있다. 시장보다 빠르게 움직였다는 점이다. 국내 공급이 어려워지자 해외 박람회에서 직접 거래를 성사했다. 유통이 어려워졌을 때는 건설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다음을 위해 빠르게 움직이는 일관성이 혜인세라믹의 성장을 일궜다. [사진=혜인세라믹]


Q. 타일 유통 사업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할아버지는 건축자재 유통을 하셨고, 부모님은 타일 유통 사업을 하셨다. IMF가 터지면서 부모님 사업이 어려워지자, 고향으로 내려가 가업을 돕기 시작했다. 부모님에게서 타일 유통을 배우며 일했고, 당시 지방에서 국내 타일 도기 대리점을 운영하던 부모님은 높은 매출을 내고 계셨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고, 독립을 결심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나 국내 제조업체들이 기존 대리점을 보호하고 있어 제품 공급을 받지 못했다. 스스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Q. 해외시장을 개척하게 된 과정도 궁금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제품을 공급받기가 어려웠다. 그때 해외로 눈을 돌렸다. 처음에는 중국과 베트남을 거쳐 인도네시아 제품을 들여왔다. 품질도 괜찮았고, 시장 반응도 좋아서 유통이 빠르게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타일 생산지 중 기술력과 디자인이 뛰어난 곳을 찾게 됐다.

스페인 박람회에 직접 갔다. 무역상의 도움 없이 부스를 찾아가 제품 히스토리를 직접 설명했고, 그동안 한국에서 판매한 실적으로 신뢰를 얻었다. 현장에서 바로 거래를 제안했는데, 다행히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고, 이에 실제 소비자인 내가 직접 거래하고 싶다 하니 물건을 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스페인 제품을 직접 수입하게 됐다.

이탈리아 시장에도 진출하려고 했다. 계약까지 마쳤는데 기존 수입업체의 방해로 제품을 받지 못했다. 다음 해 다시 박람회를 찾아가 3일 동안 아시아 담당 매니저를 기다렸다. 3일째 되는 날, 그 모습을 본 고위 관계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은행을 통해 신용장까지 개설했는데 왜 물건을 받지 못했는지 설명했더니, 그때부터는 직접 구매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이탈리아 제품을 독점으로 들여와 판매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제품을 모두 확보하면서 구색이 갖춰졌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실적이 쌓이면서 이탈리아 업체에 직접 디자인을 제안하고 제작을 맡기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유통하며, 꾸준히 성장했다.

Q. 주요 비즈니스 영역과 경쟁력은.

사업의 시작은 국내 대리점에 이탈리아와 스페인 타일을 공급하는 수입 유통이었다. 다양한 디자인과 색상의 타일을 현지에서 직접 수입하거나 주문 제작해 전국 약 400개 대리점에 공급했다. 당시에는 차별화된 디자인과 품질로 시장을 넓혀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 공장에서 유사한 저가 제품이 대량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디자인 등록과 의장 등록을 마쳤음에도 카피 문제가 계속 이어졌다. 반복되는 피해 속에서 다른 방향을 고민하게 됐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아파트 프로젝트 사업이었다. 현재는 국내 주요 건설사의 아파트 타일 스펙 제안과 납품에 주력하고 있다. 건설사와 협력 인테리어회사의 콘셉트에 맞는 다양한 디자인을 제안하고, 스펙이 확정되면 모델하우스 시공과 현장 납품까지 진행한다.

우리의 경쟁력은 디자인이다. 타일은 같은 조건에서 구워지기 때문에 강도나 규격 차이는 크지 않다. 대신 색감과 질감, 조화의 완성도가 제품의 인상을 좌우한다. 프로젝트 사업에서는 많은 세대가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 어울리는 균형 잡힌 디자인이 중요하다. 무난함 속에서도 미묘한 포인트를 더해 차이를 만들어내며,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Q. 준비 중인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다면.

현재는 기존에 타일로 시공되지 않던 부위에 타일을 적용하는 시도를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기존에 엔지니어드 스톤이 들어가던 주방 벽이나 상판 등을 타일로 대체해 모델하우스에 시공함으로써 타일의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그리고 타일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소재 개발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타일 사용 비중이 높으나 시공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중국 시공자들의 시공 기법 차이로 인해 타일 탈락이나 균열 등의 하자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건설사 관계자들에게 “타일을 좀 더 가볍게 만들고, 질감은 살리면서 크기를 조정해 대체한다면 사용할 의향이 있냐”고 물었더니, 모두 환영한다고 답했다.

일본에 갔을 때 크기는 크지만, 무게를 줄인 타일을 본 적이 있다. 다만 디자인이 세련되지 않고 질감이 떨어져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만족하기 어렵겠다고 느꼈다. 그래서 심미성을 갖추면서도 가볍고, 다른 소재로 타일을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다.

혼자 만들 수 있는 일은 아니었기에 여러 공장을 찾아가며 협의했다. 최소 생산량부터 원하는 디자인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까지 세세하게 논의했다. 현재 시제품은 완성됐지만, 아직 건설사와 협의할 단계는 아니다. 시공 방식까지 완전히 바꿔서, 가벼워 소비자가 직접 끼워 쓸 수 있을 정도의 DIY 제품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다. 이렇게 되면 시공 부담을 줄이고 인력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Q. 주 고객층 및 고객관리 방법은 무엇인가.

주요 고객은 다수의 건설사와 건축사무소, 인테리어업체다. 모델하우스 시공이 시작되기 전부터 디자인 제안을 진행하고, 이후 실제 아파트 현장 납품과 입주 후 하자 점검, 사후 관리까지 직접 맡는다. 한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평균 3년에서 5년 정도 담당자들과 꾸준히 소통한다. 정기적으로 현장을 방문해 시공 상태를 확인하고, 입주 후에도 문제가 없는지 꼼꼼하게 살핀다.

Q. 사업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시작의 순간들이다. 이탈리아 건축 박람회를 처음 다녀왔을 때, 서울경향하우징페어에 제품을 처음 출시했을 때, 그리고 첫 사옥을 마련했을 때가 그렇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는 쉽지 않았다. 6~8개월 동안 매출이 3천만 원에서 8천만 원 수준이어서 초조했고, 부모님도 서울 진출을 반대하셨다. 내 타일을 알릴 방법을 고민하다가 경향하우징페어에 참가했는데 반응이 예상보다 뜨거웠다. 허락된 시공 기간이 짧아 기존 업체들은 획일화된 타일을 특별하게 보이게 하려고 어려운 가공과 복잡한 패턴을 밤새 만들었다. 나는 과감하게 꾸밈을 덜어내고 있는 그대로 시공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획일적 디자인은 시선을 끌기 위해 별도의 가공이 필요했지만, 내가 만든 타일은 한 장마다 무늬와 색이 달라 그대로 붙여도 독특한 인상을 주었다.

손을 덜 댄 듯한 투박함과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소비자의 관심을 이끌었다. 시공 방식도 간편해 여성들도 ‘이건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지방에서 대리점 문의가 들어왔고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주문이 이어졌다. 그 시점부터 매출이 빠르게 올랐다.

2019년 코로나 시기에 학동역 인근에 첫 사옥을 마련했다. 임대 공간에서는 타일을 자유롭게 시공하고 전시하기 어려워, 마음껏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회사 건물이 생겼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Q.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영철학은.

변화를 두려워하면 그 순간이 끝이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렸다면,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강점을 돌아봐야 한다. 만약 그런 것이 없다면, 기술을 받아들이고 누구보다 빠르게 변화에 뛰어들어야 한다. 과거의 성공 방식이나 한때 잘 팔리던 제품에 집착하는 CEO 밑에서는 유능한 인재가 남지 않는다.

대학교 시절 은사님이셨던 교수님 한 분이 인공지능으로 일러스트를 배우고 직접 책을 출판하신 것을 보고 큰 자극을 받았다. 세 자녀를 대학 보내고 현직에 몸담으면서 새로운 기술을 공부하고 책까지 내셨다는 사실이 인상 깊다.

그 일을 계기로 타일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디자인을 먼저 시도해 보자는 결심을 했다. 좋은 디자인을 완성하더라도 실제 구현은 생산설비에 따라서 실현 가능성이 달라지므로, 지금은 중국과 유럽의 생산설비와 함께 인공지능을 디자인에 접목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기술이 변해도 주도권은 변화에 두려움이 없는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Q. 향후 계획은.

우리나라는 타일 사용량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정작 숙련된 타일 시공 인력은 거의 없다. 인력난으로 중국 시공자들이 현장에 투입되지만, 국내와 시공 방식이 달라 타일이 떨어지거나 금이 가는 등 하자가 자주 발생한다. 이로 인한 위험도 적지 않다. 이런 문제 때문에 건설사들이 해결책을 찾아 우리에게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는 새로운 소재의 타일을 구상해 개발 중이다. 시제품 단계를 거치며 완성도를 높이고 있으며, 제품이 상용화되면 기존의 타일 시공 방식을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