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표면처리로 출발한 ㈜대림은 주조와 표면처리를 함께 처리하며 생산 환경을 만들어 왔다. 부품이 여러 공장을 오가며 생기는 품질 문제 및 LOSS를 줄이기 위해 초기부터 공정을 한곳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했고, 직접 부품을 만들어 불량률을 낮춰 왔다. 도루코와 모나미 같은 고객사가 대림과 긴 시간 거래를 놓지 않는 이유는 품질과 책임감 때문이다.
장종수 대표는 1993년에 대림에 들어와 현장 공정을 하나씩 배우며 성장했다. 기술과 품질을 직접 지켜보며 회사를 이해해 온 만큼, 지금도 사람과 현장을 우선에 두고 회사를 이끌고 있다. 장종수 대표와 인터뷰를 나누었다.
대림 장종수 대표이사. 대림은 주조와 표면처리를 자체공정으로 처리하며, 부품을 생산해 온 제조기업이다. 장종수 대표는 1993년에 입사해 기술을 배우며, 회사를 이끌어 왔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대림의 주요 비즈니스는 무엇인가.
1984년에 창업한 대림은 낚싯줄을 감는 릴 부품 표면을 처리하는 회사로 시작했다. 현재는 다이캐스팅 분야까지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업이다. 수전금구류, 도어락 부품, WLL, BNC, 서큘러, 오디오 커넥터는 물론이고 핸드폰 부품, 중계기 안테나 부품, 고급 볼펜 외장 도금까지, 품목을 다변화시키며 성장을 이어왔다. 지금은 ‘모나미’와 ‘도루코’ 같은 글로벌기업과 협력하고 있으며, 국내 통신 3사의 1차와 2차 협력 업체로 활동 중이다.
Q. 표면처리를 하다가 다이캐스팅 업무까지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표면처리와 다이캐스팅은 모두 3D업종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표면처리 분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표면처리를 하고 나서 소재가 부풀거나 도금에 문제가 생기는 일이 자주 발생하며, 표면처리만 담당할 때는 그 원인을 가려내기 어렵다. 소재 단계에서 문제가 생긴 것인지, 주조 과정에서 문제가 시작된 것인지 알기 어려웠고, 공정의 마지막을 맡았다는 이유로 책임을 지는 상황이 반복됐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주조까지 직접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창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주조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 과정 덕분에 불량률이 크게 줄었고, 우리만의 경쟁력도 높일 수 있었다.
대림 생산 현장. 공정을 나누지 않고 한곳에서 처리하며 불량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생산 환경이다. 고객사가 요구하는 사양에 맞춘 금형부터 최종 마감까지 확인할 수 있다. 대림은 안정적 품질과 납품 능력을 유지하며, 꾸준히 거래처를 확보해 왔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1993년에 입사해 2018년에 대표이사를 맡았다. 아버지와 함께 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원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대림을 창업하고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함께 하자며 내게 먼저 손을 내미셨다. 아버지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에 입사했고, 25년 가까이 현장에서 실무를 배운 뒤에 아버지는 은퇴하시고 대표이사에 취임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걱정도 많았다. 창립자의 아들이라고 해서 직원들이 편견을 가지는 것도 싫었고, 낙하산이라는 소리도 듣기 싫었다. 그래서 매일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겠다고 마음먹었고, 지금까지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Q. 다른 다이캐스팅 기업과 차별화되는 대림만의 특징이 있다면.
가장 큰 특징은 주조와 표면처리를 모두 다루는 점이다. 물건을 만들 때는 두 작업을 각기 다른 업체에 맡기는 경우가 많아 금형이나 완제품을 여러 번 옮겨야 하고, 이동 과정에서 파손과 비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두 작업을 한자리에서 처리해 금형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일이 없다. 공정 사이에서 필요한 부품도 직접 만든다. 도루코 면도기나 중계기 안테나에 들어가는 황동 부품을 아연으로 제작해 비용을 크게 낮춘 적이 있다. 우리와 거래한 업체는 상당수 오랜 기간 관계를 이어 왔다. 주요 협력사는 40년 동안 변함없이 함께해 왔을 만큼 높은 신뢰를 자랑하고 있다.
Q. 중소기업에서는 쉽게 시도하기 힘든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아버지께서 대표이사로 계실 때부터 준비해 온 계획이고, 2018년에 대표가 바뀌면서 추진한 방침이다. 외부 자금 없이 우리가 벌어들인 수입만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시작했다.
작은 규모의 제조업에서 무차입 경영을 이루기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장기적인 플랜을 세워 실행한 끝에 2020년에 무차입 경영을 실현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 기조를 이어 가는 중이다. 내실을 다지기 위한 선택이었고, 지금 생각하면 그 선택이 맞았다고 본다. 잉여금이나 큰 규모의 자본을 갖추지 못해 회사 성장 속도가 빠르게 오르기 어려운 점은 있었으나, 재정 건전성이 높아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었다.
장종수 대표이사는 늘 거래처와의 약속은 끝까지 지키는 태도를 지켜왔으며, 오랜 시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해 왔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사업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위생 생활용품을 생산하는 D사와의 거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D사는 규모가 큰 글로벌기업이어서 어떻게든 수주를 따내려고 2년 넘게 공을 들였던 곳이다. 처음으로 양산 계약을 맺고 납품까지 했을 때 가장 큰 기쁨을 느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도 D사와 관련된 일이었다. 작년 이맘때쯤 우리가 생산한 제품을 베트남으로 보냈고, 베트남에서 조립된 상태로 돌아온 제품에 도금 문제가 있었다. 문제의 양이 약 20만 개였다. 그 자체로도 큰일이었지만, 이 불량으로 인해 D사가 해외 바이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그 부담을 우리가 그대로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 공장을 모두 정리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였고 금액으로는 120억 원 정도였다.
본사 회의에서 여러 방안을 논의하던 중 우리가 직접 해결하겠다고 실무진을 설득했다. 선박으로는 시간이 부족하니 항공을 활용해 다시 보내자고 제안했고, 그 비용은 폐사가 모두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당시 D사 책임자가 왜 그렇게까지 하려 하느냐고 묻던 게 기억에 남는다. 나는 당장 드는 비용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신뢰가 무너지는 게 싫다고 답했다. 규모가 작은 회사지만 D사와의 계약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신뢰였기 때문에, 그 신뢰를 저버릴 수 없었다. 결국 무사히 문제를 해결했고, 담당자로부터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받을 수 있었다.
7년 전 적은 매출로 시작해 품질과 납기 대응으로 인정받아 현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국내 J사를 통해 인도로 보내지는 샤워기 헤드 부품 전량을 폐사에서 표면을 처리하기로 한 날도 기억에 남는다.
Q.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비즈니스가 있다면.
현재 대림은 아연과 알루미늄 두 소재를 함께 다루고 있다. 한 장소에서 두 소재를 사용하면 혼입 위험이 있어 품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알루미늄 기계를 외부 업체에 설치해 필요할 때마다 생산하고 있다. 거리가 있는 곳에서 생산하다 보니 여러 불편함이 따른다. 그래서 두 소재를 모두 안정적으로 다룰 수 있는 큰 규모의 공장을 찾고 있다. 환경 규제와 관련된 조건만 맞는다면 3층 규모의 공장을 마련해 그 안에서 모든 공정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Q. 최종 꿈, 비전은 무엇인가.
다이캐스팅과 표면처리는 뿌리산업에 속해 오래 지속될 업종이다. 다만 성장이 제한적이라 중견 규모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점도 현실이다. 우리는 이름 그대로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오래도록 살아남고 싶다. 대림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회사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여러 조건을 갖추려는 계획도 있다. 직원 및 직원 가족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좀 더 가족같은 분위기로 앞으로도 직원들과 함께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며, 즐겁게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