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포장재 제조 기업 태방파텍을 이끄는 정희국 대표는 어려서부터 장사나 영업을 해보면 스스로 원하는 만큼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바라던 꿈을 하나씩 현실로 이루어냄으로써 그 확신을 증명해 보였다.
그의 사업가 기질은 특히 위기에서 빛을 발했다. 6·25 세대라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밤낮없이 공부해 공고에 합격해 대기업에 입사했고, 과중한 업무로 인해 생사를 다투는 건강이 악화했지만, 병상에서 일어나 태방파텍을 설립했다. IMF 외환위기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지만, 신선도를 유지하는 ‘숨 쉬는 필름’과 뜯지 않고 조리할 수 있는 ‘찜팩’(ZZimpack)을 개발했다.
여기에 해외로 눈을 돌려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정희국 대표와 인터뷰를 나누었다.
식품 포장재 제조 기업 태방파텍 정희국 대표가 대표 제품 ‘찜팩’을 들고 있다. 그는 뜯지 않고 전자레인지로 조리할 수 있는 찜팩과 농산물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숨 쉬는 필름’을 개발해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현재 제2공장 증축을 계획하며 세계 시장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강소기업뉴스]
6·25 전쟁 2년 전에, 육 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피난민 세대다. 당시는 말하기 어려울 만큼 찢어지게 가난했다. 어떻게 하던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성과가 바로 보상으로 이어지는 장사나 영업 일을 해야겠다는 꿈을 품었다. 그래서 선택과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는 일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 일이 자유로운 직업이라고 느꼈다. 그 뒤로 야간 중학교에 다니며, 있는 힘을 다해 공부했다. 틈틈이 아이스크림 장사와 엿장수까지도 했는데 적성에 맞았고, 재미있었다.
노력 끝에 대기업 제지회사에 입사해 제지연구소에서 7년 동안 근무했다. 민간 연구소 1호 연구원으로 뽑히며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공고 출신으로 계급이 굳어진 조직 분위기에서 답답함을 느꼈다.
Q.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마침 중소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고, 그 일이 내가 바라던 영업직이었다. 제지회사를 상대로 제지 기계 설비 영업을 맡았다. 회사 매출의 큰 부분을 담당할 만큼 영업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 그런데 일생에서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다. 쉴 새 없이 일한 끝에 건강이 나빠졌다. 급성 간 농양으로 체온이 40도까지 올라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한 달 동안 병원에서 지내며 기적처럼 회복했고, 회사로 돌아가 월급을 받았는데 60%만 지급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회사 생활에 최선을 다 해왔지만, 돌아오는 처우를 보며 회의를 느꼈다. 창업을 생각해 온 시간이 있었고, 그때 내 나이가 마흔두 살이었다. 창업을 서두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Q. ‘숨 쉬는 필름’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IMF 외환위기가 낳은 산물이다. 자금난에 허덕이던 시기였다. 은행의 갑작스러운 대출 회수 통보로 회사는 풍비박산이 나고 살고 있던 아파트까지 경매로 넘어갔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우연히 러시아 박람회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빵 공장을 운영한다는 사장을 만났다. 러시아 전통 빵인 초르니 흘렙에 쓰일 포장지를 공급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가 원한 포장지는 필름에 미세한 공기구멍을 뚫어 곰팡이의 자생을 막아 신선도를 유지하는 제품이었다. 놓치면 안 되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덥석 의뢰를 수락했다.
Q. 개발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
숨 쉬는 필름을 개발하는 일은 예상보다 어려웠다. 여러 곳에 문의한 끝에 경기도 양주의 한 공장을 찾아 샘플을 제작해 러시아로 찾아갔다. 그런데 가격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계약이 성사되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바로 농산물 포장재였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 등 농산물 포장 소재로 대치하면 기능성 포장재로서 훌륭할 것 같았다.
Q. 숨 쉬는 필름으로 재기의 발판을 만들었다.
드디어 제작한 시제품을 들고 마트와 백화점 식품관을 찾아다니며 제안했으나 포장지가 없어도 판매에는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3개월 동안 무상으로 공급할 테니 사용해 본 뒤 만족하면 계약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숨 쉬는 필름으로 포장된 농산물이 신선도 유지는 물론 진열대에서의 상품 외관이 한층 살아나 매출이 상승했고, 농산물 유통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3개월이 되기도 전에 정식 납품 요청을 받았다. 그때의 벅찬 마음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결국 숨 쉬는 필름의 성공으로 IMF 이후, 사업 재기 10년 만에 연 매출 100억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Q. ‘찜팩’도 위기 상황에서 개발했다.
숨쉬는 필름의 성공으로, 탄력을 받은 후에 생산 규모를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새 공장 증설을 서둘렀다. 큰 자금이 투입된 만큼 과열된 확장에 따른 이자 부담이 커졌다. 모든 사업이 위기인 순간이 찾아왔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위기 안에서 길을 찾는 과정이라 생각했고 개발에 대한 의지가 다시 강하게 생겼다.
어려움을 신제품 개발로 극복하겠다고 마음먹고 2년 동안 의지를 불태우며 연구했다. 그 결과가 나왔고 찜팩이 꺼져 가던 불씨를 다시 일으키기 시작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10여 개국 특허를 등록했고 국내외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기술로 발돋움 하기에 이르렀다.
기존 용기는 밀봉된 채 전자레인지에 넣으면 터질 위험이 있어 뜯어서 데워야 했다. 그 과정에서 건조가 시작돼 음식의 고유한 맛과 풍미를 잃었다. 찜팩은 수분을 최대한 지켜 압력밥솥에서 익힌 것 같은 촉촉한 식감과 깊은맛을 재현해 낸다.
Q. 찜팩은 어떤 원리인가.
찜팩은 전기밥솥과 비슷한 기능을 구현해 HMR(가정간편식) 냉동식품을 전자레인지로 데울 때 뚜껑 필름을 뚫거나 벗기지 않아도 바로 사용할 수 있다.
대각선 방향의 모서리 두 곳을 안쪽으로 돌출시킨 뒤 그 부위에 증기 배출구를 만들었다. 필름을 뚫지 않고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과포화 수증기가 생기면서 용기 내부 온도가 높아진다. 수증기가 약 120도까지 데워졌을 때 필름이 부풀어 팽창하게 되어 증기 배출의 작은 구멍으로 수증기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원리다. 2017년 IR5 장영실상, 2017년 세계포장협회(WPO)의 ‘월드스타상(WSA)’등을 수상하며 그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Q. 주 고객층과 고객관리 방법이 궁금하다.
한국 시장에서는 중견, 소기업 식품 회사를 대상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 미국, 싱가포르, 러시아, 태국, 베트남으로 수출 중이며 더 많은 해외 시장으로의 수출을 위해 해외 전시회나 박람회를 통한 홍보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2019년 베트남에 해외 공장도 운영하고 있다.
Q. 경영철학은 무엇인가.
사람에 대한 신뢰다. 신뢰는 곧 신용으로 이어지고, 신용은 돈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것이 귀하면 남의 것도 귀하다는 마음으로 고객과 직원을 대한다. 마지막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할 수 있는 만큼 다하고, 그다음에 오는 결과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Q.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위기라는 건 있지만 기회도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해외를 바라봐야 한다. 세계 시장으로 나가려면 안정적으로 생산할 조건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찜팩을 생산하는 제2공장을 확장해 생산을 안정적으로 이어가고, 공급을 유지하는 일을 목표로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