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감 넘치는 스포츠 경기를 보거나, 흥분했을 때, 혹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 뜨거워졌을 때, 우리는 ‘열광의 도가니’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도가니는 쇠붙이를 녹이는 데 쓰이는 커다란 그릇을 말한다. 이렇게 뜨겁게 끓어오르는 상황을 빗대어 쓰는 말이다.
주식회사 부창이엔지는 관용적으로 쓰이는 단어 중 하나인 도가니를 유통·납품하는 강소기업이다. 가풍현 대표는 1984년부터 2025년까지 도가니 유통과 판매에 전념해 온 전문가다.
금속을 녹여 알루미늄이나 정밀 주물을 생산하는 기업에 양질의 도가니를 공급하며, 입지를 굳혀왔다. 40여 년 동안 한길을 걸어온 그는 도가니 산업의 산증인이라 할 만하다. 가풍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부창이엔지 가풍현 대표. 부창이엔지는 40여 년간 도가니 유통에 한길을 걸어온 전문기업이다. 가풍현 대표는 거래처와 함께 성장하며 주조산업을 지켜왔다. 기술보다 신의를 우선하는 그의 태도는 기업의 오랜 생존력과 브랜드 경쟁력이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도가니와 다이캐스팅. 용어가 어렵다. 어떤 영역인지 설명을 부탁한다.
쇳물이나 비철금속을 녹인 후에 일정한 금형에 부어 굳혀서 자신들이 원하는 제품, 부품을 만드는 공정을 주조라고 한다. 이러한 주조 공정 전반을 아우르는 산업을 주물산업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가장 기초가 되는 뿌리산업 중 하나가 알루미늄 다이캐스팅이다. 알루미늄이나 금속을 가공하기 위해서는 일단 녹여서 쇳물 형태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을 수행하는 곳이 바로 도가니다. 다이캐스팅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녹인 금속과 비철금속 합금 등을 필요한 금형에 주입해 원하는 부품이나 주물을 대량 생산하는 방식이다.
Q. 현재 운영하는 비즈니스는.
독일의 마무트베트로(Mammut-Wetro)는 SiC 도가니(Silicon Carbide Crucible)를 생산하고, 프랑스 아텀(ATHERM)은 일체형 침적식 세라믹 히터를 만든다. 독일 트리보케미(Tribo-Chemie)는 다이캐스팅 금형 이형제를 제조하며, 허쉬(HOESCH)는 FLUX 용탕 불순물 제거제를 공급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포켐인터내셔널(Fochem-International)은 플란저용 고체 윤활제를 생산하고, 중국 이싱화징(Yixing Huajing)은 세라믹 보호관을, 이싱다이캐스트플라스틱스(Yixing Diecast Plastics)는 세라믹 부품을 제작한다. 우리는 이런 해외 도가니 전문 제조기업과 선진 기술 제품을 들여와 유통하며, 다이캐스팅과 주조 과정에 필요한 장치와 부품을 직접 제작한다.
Q. 도가니를 수입, 유통한다고 했는데, 국내에서는 자체 제작하는 업체가 없는 건가.
현재 국내에는 자체적으로 SiC도가니를 Isostatic Press 공법으로 제작하는 기업이 없으며, 세계적인 주요 브랜드 대부분은 유럽과 중국에 분포되어 있다. 국내 기술력은 부족하지 않지만, 시장 규모가 작고 한정적이어서 자체 개발로 이어질 만큼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는 아니다.
Q.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1984년 무역회사이자 국내에서 도가니를 취급하는 기업 중 독보적인 위치에 있던 주식회사 대성에 입사하며 처음 도가니를 접했다. 13년간 도가니 사업부에서 유통과 판매를 하면서 비철금속 캐스팅 산업을 이해하고, 거래처 담당자들과도 친해졌다. 한 회사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뒤, 이직을 준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기계공학을 전공한 친구가 함께 사업을 하자고 해서 창업을 준비했는데, 여러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결국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때, 부산 지역에 거점을 두고 도가니 판매를 하던 사장님이 나를 찾아왔다. 활동 영역을 서울까지 넓히려고 하는데 정보나 판로가 제한적이라 힘드니, 도가니 판매를 같이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그래서 1997년부터 그분과 동업을 하면서 부창이엔지를 창업하게 되었다.
Q. 주 고객층과 관리 방식은 어떻게 되나.
주 고객은 자동차 부품, 통신장비, 가전제품, 산업기계, 전기·전자부품, 주방기구 등을 제조하는 다이캐스팅 업체들이다. 최근에는 비철금속인 알루미늄의 활용이 높아졌기에 알루미늄 소재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 대부분이 주요 거래처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1차 협력업체와 약 150개 기업이 주요 고객사다. 도가니는 사용 방법과 관리 상태에 따라 수명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본 소모품으로 분류된다. 정기적으로 고객사를 방문해 도가니의 상태를 점검하고 재고와 발주량을 예상한다.
Q. 준비 중인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다면.
비철금속 주조 산업은 에너지 소비가 많은 분야다. 알루미늄 다이캐스팅이 대형 공정으로 전환되면서 최근에는 도가니 대신 전기를 열원으로 사용하는 침적식 보온로와 용해로가 널리 쓰인다. 우리는 기존 분리형 히터보다 약 15~30% 정도 에너지를 절감하는 일체형 침적식 세라믹 히터를 개발해 유통하고 있으며, 다이캐스팅 기계 주변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 장치와 서비스도 자체적으로 만들고 있다.
다이캐스팅 작업장은 용탕을 사출하는 플란저 팁과 슬리브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액체 오일을 사용하기 때문에 미끄럽고 오염되기 쉽다. 그래서 대체할 수 있는 고체 형태의 오일을 국내에 소개하여 처음으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상온에서는 작은 알갱이 형태로 존재해 작업장을 깔끔하게 유지할 수 있고, 다이캐스팅기계의 슬리브처럼 온도가 높은 부위에 투입하면 녹아 액체가 되어 윤활성이 높아지는 제품이다. 이 제품을 사용하면 제품의 불량을 줄일 수 있고, 작업장의 청결이 유지되고, 미끄러짐이나 부주의로 인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Q. 부창이엔지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오랜 시간, 도가니 사업을 하면서 얻게 된 다양한 네트워크와 노하우다. 대부분 거래처가 오랫동안 거래를 하며 친분을 쌓아온 탓에 서로 부담 없이 소통하고 있으며, 업체마다 도가니나 기타 소모품의 수명 주기를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있다. 같은 품질의 도가니라고 해도 작업 환경이나 업체의 관리에 따라 수명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에, 직원들이 직접 업체와 소통하며 불편함이나 소모품 교체 등의 이슈를 처리하고 있다. 또한 업계에 유용한 신기술, 혁신적인 제품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회가 될 때마다 해외 전시회나 박람회에 참석하고 있다.
부창이엔지는 금속을 녹이는 데 쓰이는 도가니와 주조 장비를 전문으로 다뤄왔다. 독일, 프랑스, 중국 등 해외 유수 브랜드의 도가니를 들여와 국내 다이캐스팅 업체에 공급하고 있으며,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이해하고 제안하는 것이 강점이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영철학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건 신의다. 대기업의 영업사원으로 이 일을 시작했지만, 사실 나는 내향적인 성격이라 처음에 영업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정성을 다하는 것이었다. 고객들과의 사소한 약속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고객 본인뿐만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인연을 이어간다.
마지막으로 고객의 요구가 있으면 최대한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한다. 고객으로서는 도가니에 문제가 생기거나, 부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그동안 일을 못 하므로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원인과 해결 방법을 직접 가서 설명하고 조치해 신뢰를 얻고 있다.
Q. 사업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사업을 막 시작하여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에 기아자동차 1차 협력사인 업체의 구매담당자가 연락이 왔다. 기존 거래처에서 현금이 아니면 상품을 구매할 수 없다고 해서 상품을 외상으로 공급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담당자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공급을 해줬다. 그 일 이후, 이 고객사가 점점 성장하더니 나중에는 우리의 가장 큰 고객사가 되는 믿기 힘든 일을 겪었다. 지금도 담당자와 그때를 회상하며 미소를 짓기도 한다.
Q.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도가니와 다이캐스팅 시장은 앞으로 급격히 성장하거나 높은 부가가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분야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기업들이 이미 기술을 빠르게 흡수해 품질 좋은 제품을 더 낮은 가격에 공급하고 있으며, 업계의 주요 화두로 떠오른 자동화와 스마트화는 자금력이 있는 일부 대기업만이 가능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업계 전체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희망은 있다.
한국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높은 정밀도가 필요한 고품질, 대형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우리 역시 그 방법과 창구를 다각도 고민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제 슬슬 은퇴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어서 5년 후, 10년 후에도 부창이엔지를 문제없이 경영할 수 있는 후계자를 키워내고 싶다. 나의 청춘과 인생이 깃든 이 회사가 앞으로도 제 자리를 지키며 오래도록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기길 바란다.